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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 건축 속 민중 작가의 숨결; 고리키 하우스 본문

러시아여행

아르누보 건축 속 민중 작가의 숨결; 고리키 하우스

또잉또잉(^0^) 2025. 8. 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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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해 드릴 곳은 제가 모스크바에서 너무 좋아하던 장소예요. 예전에 한 지인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는데 그분이 사시는 집이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이었는데, 그것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근처에 아르누보 양식 건축물이 있다고 하셔서 가게 된 곳이지요. 바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아버지, 막심 고리끼 생가였습니다. 
큰 기대없이 들렀던 곳인데 첫 방문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이후로도 다른 지인들과 더불어 수차례 더 방문했었어요. 조그마한 집이지만 볼때마다 새로운 디테일들이 끝없이 발견되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곳은 고리끼가 이탈리아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1931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거주한 집으로, 당시의 가구, 서재, 원고, 사진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생전 작가의 생활상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박물관입니다. 

자, 그럼 막심 고리키 하우스를 둘러 보실까요? 

TTOING 1.  고리키 하우스의 건축

이 저택은 건축가 표도르 셰흐텔 (Fyodor Shekhtel) 이 1902년에 설계한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저택으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장식, 곡선미가 뛰어난 인테리어가 특징입니다.
처음 건축된 이후 은행업, 섬유 산업, 기계 공업을 경영하던 리아부신스키 가족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1917년 이후 가족은 이민을 갔고, 저택에는 차례로 다섯 개의 소련 기관이 입주했습니다. 먼저 비자 및 여권 부서, 다음으로 국가출판국, 예르마코프 교수가 이끄는 심리분석 연구소, 그 다음 당 간부 자녀를 위한 유치원, 마지막으로 전소련 해외 문화 교류 협회 (ВОКС)가 차례로 입주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31년 저택에 새로운 주인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막심 고리키로, 그는 1936년 사망할 때까지 5년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고리끼가 사용하던 침대
고리끼 사후 본을 뜬 데드마스크(*러시아의 유명인사는 사후 데드마스크를 뜬 경우가 많아요.)

TTOING 2.  아르누보 양식의 절정, 고리키 하우스

스탈린은 이탈리아에서 망명중이던 고리끼를 러시아로 귀국시키면서 이 저택을 고리끼에게 선물합니다. 저택의 화려함과는 별개로 고리끼는 이 저택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막심 고리키는 저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 집은 스탈린이 직접 고리키를 위해 선택한 것이었고, 고리끼가 작가 생활에 몰두할 수 있도록 나름의 편의를 모두 갖추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조용하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으며, 산책용 정원도 마련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고리키는 저택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집은 어리석지만, 일할 수는 있다.” (*이 집을 그렇게 표현하다니.. 고리키씨 실망이에요~ㅎ) 특히 내부 기둥머리에 장식된 살라만더들에 질색을 했다고 하네요.
고리키의 취향이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분명 독특하고 예술적인 저택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입구를 들어서서 내부로 들어서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놀랐던 중앙 계단
물결치는 계단의 형태가 마치 바다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몽환적이고 신비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자꾸 멍하니 바라보고 서있게 되는 계단이에요.
고리끼가 다른 작가 및 예술인과 교류했던 응접실
고리끼의 서재에 장식된 스테인드 글라스
중앙 계단 맞은편 메인 현관 위에 장식된 스테인드 글라스 (*제가 방문했을 떄 메인 현관은 폐쇄되어 있고, 집 뒷편의 정원을 지나면 보이는 후문이 정식 출입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메인 현관은 대로와 바로 접해있어서 방문객이 입장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여긴 것 같아요.
1층과 2층이 연결된 층고 높은 벽에 난 창을 장식한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꽃잎과 줄기가 어우러진 천창의 화려한 장식
자세히 볼수록 더 빠져드는 고리끼 하우스의 문양들
예사롭지 않은 고리끼 서재 창틀의 형태
고리끼가 이 저택에 들어섰을 때 기둥위에 이 장식들때문에 질색을 했다고 한다.
문의 손잡이도 예사롭지 않게 장식적이다. 세련되고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
문마다 자연물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어 얼마나 공들였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외벽의 꽃은 그림이 아니라 작은 타일을 붙여 만든 모자이크로 추운 겨울에 볼 수 없는 초록초록한 잎들과 화려한 꽃을 외벽에 장식하여 사시사철 자연속에 생활하는 듯한 효과를 의도한 것으로 추측되지요.

사진 몇장만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고리키 하우스의 아름다움입니다. 제가 이렇게 감탄하며 소개하는 모습을 고리끼가 본다면 뭐라고 할까요?

'니가 살아봐라!!!'

맞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저 잠시 들렀다가는 방문객이기에 그럴 수 있지요. 계속 살아야 한다면 다를 수 있을 거예요. ^^;;;
 

TTOING 3.  막심 고리키의 망명과 귀환

잠시 고리끼 이야기를 해 볼까요? 1900년대 초 러시아는  차르 체제의 정치적・사회적 모순, 인민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에 대한 불만등이 가득했습니다. 고리끼는 기존의 차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적극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1905년 제 1차 러시아 혁명이 실패한 후 차르 정부의 탄압을 피해 1906년부터 유럽을 전전하다 최종적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카프리 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이유도 있었지만 고리끼가 이탈리아에 머문 또 한가지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였습니다. 젊을 때부터 폐결핵 증세가 있었던 고리끼가 러시아의 혹독한 기후 보다는 온화한 기후의 이탈리아는 치료와 요양에 적합했죠.지중해의 풍경과 조용한 생활 속에서 장편 **『어머니』**를 집필·수정했고, 이후 자서전 3부작의 기초도 마련하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이때 고리끼는 유럽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국제적인 명성도 얻게 됩니다. 

그렇게 안락하게 이탈리아에서 살던 고리끼는 왜 러시아로 돌아오게 되었을까요? 

첫째는 정치적 변화입니다. 1917년 제 2차 러시아 혁명 후,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정권인 소비에트 연방이 건설됩니다. 고리끼는 볼셰비키의 폭력적 수단에 비판적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소련 정권은 “민중의 작가” 고리끼를 필요로 했습니다. 1928년, 스탈린 정권은 고리끼에게 귀국을 권유하면서 거대한 명예와 특권을 약속하게 됩니다. 
러시아로 귀국한 고리끼는 소련 문학계의 상징적 지도자가 되었고, 1934년 제1차 전연방 작가대회의 명예 의장 역할을 맡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공식 문학 노선으로 확립하는데 힘을 기울입니다. 귀국 후 그의 이름을 따 '니즈니 노브고로드'라는 도시의 명칭이 “고리끼 시”로 개명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얼마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리끼는 귀환 후 특권적 대우를 받았지만, 동시에 스탈린 체제의 도구화 되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역사는 고리끼가 폐렴으로 사망(1936년)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그가 스탈린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TTOING 4.  고리키 이름의 뜻?

  • 본명: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Aleksey Maksimovich Peshkov) / 1868~1936년 
  • 필명 ‘고리키’의 뜻: 러시아어로 ‘쓴, 쓰디쓴’이라는 뜻의 горький(고리끼)에서 왔어요. 당대의 가난과 사회적 불의를 드러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 직업/정체성: 소설가·극작가·수필가. 러시아/소련 문학에서 **사회적 리얼리즘(혹은 ‘낭만적 리얼리즘’)**을 대중화한 핵심 인물로 평가됩니다.

이상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막심 고리키 하우스였습니다.
더 많은 러시아 작가들의 생가도 곧 포스팅 할게요~ 많이 기대해 주세요!! ^^
구독+댓글+공감+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또잉또잉(^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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